UAK 추천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길"
동영상(한국어) 감상


유란시아 책을 만나려면..

 

 

 

 

 

 

 

 

■유란시아 어소시에이션 인터내셔널 한국어 페이지 수정 : winwinhappy@hanmir.com
Urantia Association International Korean page
was  modified by : winwinhappy@hanmir.com

                               *
유란시아 재단 한국어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urantia.org/korean/index.html

세계 유란시아 협회 바로가기 : http://www.urantia-uai.org

 

 

 

 

유란시아란?

자주묻는질문

그밖 질문들

먼저만난사람들

유란시아목차

유란시아만나기

(계속 업데이트 중입니다)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  

 -하느님은 진짜로 우리가 받는 고통을 실제로 느끼고 또 알고 계시나요 ? 

 -왜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데도 가만히 계신가요 ? 

 -왜 하느님은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나요 ? 

 -하늘나라에는 어떻게 해야 가는 것인가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모두 맞는 건가요 ?  

 -사람들이 왜 경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또 명상을 해야 하나요 ? 

 -동물에게도 혼이 있나요 ? 이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 

 -내가 사는 삶의 의미와 임무는 과연 무엇이며 또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요 ? 

 -하느님이 정말로 완전한 세상을 바라셨다면 왜 아담과 이브가 잘못할 때까지 내버려 두셨나요 ?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나요 ?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생명체와 진짜 접촉할 수 있을까요 ?  

 -다른 외계에 정말로 지능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요 ? 

 -사람이 죽으면 정말로 그 혼이 딴 모습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지구로 돌아오나요 ?  

 -오직 물질적 행복과 가치만을 즐기던 사람이라면 죽어서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  

 -종교적 진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인가요 ? 

 -인간은 진화된 것인가요 아니면 창조된 것인가요 ?

 -지구와 이곳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끝까지 살아가게 되나요 ? 

 -기도를 하라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 

 -결혼해서 가정생활을 가지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나요 ? 

 -과학과 철학과 종교가 서로 조화가 되는 때가 올 수 있을까요 ?  

 -정말 하느님이 우리와 늘 함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요 ? 

 -내가 기도하면 정말로 하느님이 듣고 대답할까요 ?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 

 -솔직히 말해서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는 분인가요 ? 

 -천사가 진짜로 존재하는 건가요 ? 

 -죽으면 정말로 다른 세상이 있나요 ?

우주 아버지는 모든 창조의 하느님이시며,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근원이며 중심이다. 우선 하느님을 창조자로서, 다음에는 조정자로서, 그리고 맨 나중에는 무한한 유지자로서 생각하라. 예언자들이 "하느님, 당신은 홀로 계시며 ;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창조하셨고 또한 하늘들의 하늘을 그곳의 모든 무리들과 함께 창조하셨으며 ; 이들을 보존하고 조정하십니다. 우주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주는 빛으로 옷처럼 자신을 두루고 있으며 휘장처럼 하늘들을 펼치십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우주 아버지에 대한 진리가 인류에게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우주아버지의 개념 ─ 많은 하느님들 대신 한 하느님 ─ 만이 필사 사람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신성한 창조자와 무한한 조정자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글 1편 0.1] 

우주 아버지는 개인성의 하느님이다. 개인성 지위의 가장 낮은 필사자 인간  그리고 물질 창조체로부터 신성한 지위에 계시는 가장 높은 개인에 이르기까지, 창조자 존엄자이며 우주 개인성의 권역(權域)은 그 중심과 테두리를 우주 아버지 안에 둔다. 아버지 하느님은 모든 개인성의 증여자인 동시에 보존자이다. 그리고 낙원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성한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선택한 모든 유한 개인성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그 운명이다[글 5 편 6.1] 

하느님은 영 세계의 최초 실체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마음 영역에서 진리의 근원이다; 물질 영역에 두루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창조된 지능존재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하나의 개인성이고, 우주들의 우주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째근원인 동시에 중심이다. 하느님은 사람 같지도 기계 같지도 않으시다. 첫째 아버지는 우주의 영이고, 영원한 진리이며, 무한한 실체이고, 아버지 개인성이다.[글 1 편 2.1] 

영원한 하느님은 이상화된 실체 또는 개인구현된 우주보다 더욱 무한하다. 하느님은 단순히 사람의 최극의 욕망, 필사자가 추구할 대상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단지 정의(正義)의 힘-잠재적이라는, 어떤 개념도 아니다. 우주 아버지는 자연계에 대한 동의어가 아닐 뿐 아니라, 개인성화된 자연 법칙도 아니다. 하느님은 초월적 실체이며, 단지 최극 가치에 대한 사람의 전통적 개념이 아니다. 하느님은 영적 의미들에 대한 심리적 초점화 구현이 아니며, "사람의 가장 고귀한 작품"도 아니다. 하느님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개념들 중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이다. 그는 지상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고, 죽음에서 개인성의 생존을 경험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생존되는 개인이고 사랑하는 아버지이다.[글 1 편 2.1]

나는 영원자로 부터 왔고, 우주 아버지가 현존하는 곳에 반복하여 되돌아갔었다. 나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인 영원하고 우주적인 아버지의 실제성과 개인성에 대해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느님이 절대이고 영원하며 그리고 무한하며 또한 그는 선하며 신성하며 그리고 자비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위대한 선언들의 진리를 알고 있다: "하느님은 영"이고 "하느님은 사랑"이며, 이 두 속성들은 영원 아들 안에서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밝혀져 있다. [글 1 편 3.8] 

 

"너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고통을 받고 있고,""너희가 승리하는 모든 경우에 그도 너희 속에서 그리고 너희와 함께 승리한다"라는 말들은 정말로 사실이다. 그의 전(前)개인성의 신성한 영은 너희의 실제적인 일부분이다. 낙원 섬은 우주들의 우주의 모든 물질적 변형에 응답한다;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의 모든 영 충동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행위자는 팽창하는 조화우주에 대한 마음 표현 모두를 함유하고 있다. 우주 아버지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전체 진화 창조의 모든 실존개체, 존재, 개인성의 상승하는 영들 그리고 확대하는 마음들의 점진적 투쟁이라는 그 개별적 경험 전체를 신성한 의식의 충만함 속에서 실제화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우리 모두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로 사실이다.[글 1편 5.16]

창조자는 사람들이 신성한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가 생겼을 때, 그 결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려는 시도를 가장 먼저 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이다 ; 따라서 그는 때로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함께 하는 자가되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역경에 있게 한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에 받고 있는 동안에도"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우리와 함께 고통 받고 있음"을 기억하라. [글 2편 5.3]  

 

느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신성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생애가 불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존재가 변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진화하는 창조체들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정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다음 내용을 한번 생각해 보라 :[글 3 편 5.5]
 

 

1

용기 ─ 성격이 강인해지고 또 힘이 넘치는 것 ─

용기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만약 그렇다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움도 만날 수 있고 그리고 또 실망스러움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정한 환경에서 성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2

애타심 ─ 자기 이웃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주는 것 ─

애타심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삶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사회의 어떤 불평등과 부딪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3

희망 ─ 굳건한 믿음에서 나오는 위대하고 웅대한 것 ─

희망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현재는 항상 불안하고 또 되풀이되는 의문에 계속해서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신앙 ─ 인간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결심 ─

신앙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것이 믿을 수 있는 것보다 늘 부족하게 알게 되는 그러한 힘든 곤경에서, 그렇게 그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5

진리를 사랑하고 그것이 이끄는 데로 어디던지 가보려고 기꺼이 나서는 마음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실수가 존재하고 항상 허위가 있을 수 있는 세상에서 자라나지 않으면 안된다.

 

6

이상주의 ─ 어떤 신성한 것에 다가가는 개념─

이상주의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상대적인 선(善)과 미(美)가 있고, 그래서 보다 나은 것에 도달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는 그러한 환경에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7

충실함과 의리 ─ 가장 높은 본분을 지키는 전념 ─

충실함과 의리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배반과 이탈이 일어나는 그러한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한 가운데에서 견디어내야 한다. 의무에 전념하는 용기에는 불이행이라는 위험이 존재한다.

 

8

사심없는 태도 ─ 자기를 잊어버리는 정신 ─

사심없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음을 겪는 사람은 자기자신이 인정받고 또한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피할 수 없는 자기자신의 함성을 마주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만일 버리고자 하는 자기자신만의 생활이 없다면 신성한 삶을 힘차게 힘을 내어 선택할 수가 없다. 만일 선(善)을 드높이고 그와 차별할 수 있는 어떤 대비로서의 잠재적인 악(惡)이 없다면 사람은 결코 정의(正義)위에 그 구원이 되는 발판을 놓을 수가 없다.

 

9

기쁨 ─ 행복에 대한 만족감 ─

기쁨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자기에게 가능해지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그와 대비되는 다른 쪽인 고통과 그리고 고난받을 가망이 언제나-실재하는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가디아를 만났을 때, 그들은 선(善)과 악(惡)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팔레스틴 청년은 세상에 선과 악이 병행하여 존재하는 부당성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느님이 무한히 선하시다면, 어째서 우리로 하여금 악으로 인한 슬픔을 겪게 내버려두시는지요?  도대체 악은 누가 만들어낸 것입니까?"라고 말하였다.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선과 악 둘 모두를 창조했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었지만, 예수는 그 같은 잘못된 가르침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그 질문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형제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럼으로 그 분은 반드시 선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선함은 너무나 위대하고 실제이므로, 악의 그 작고 또 실제도 아닌 것들은 들어있을 수가 없다. 하느님은 너무나 적극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잠재적인 악도 남아있을 여지가 절대적으로 없다.  악은, 선에 저항하고 아름다움을 거부하며 진리에 불충하는 무리들의 성숙되지 못한 선택이며 경솔한 과실이다.  악은 단지 미숙(未熟)함을 오용한 것이거나, 혹은 무지(無智)로 인한 파괴적이고 왜곡된 작용일 뿐이다.  악은 어리석게 빛을 거부한 결과로 수반되는 필연적인 어두움이다. 악은 어둡고 거짓된 것이며,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고의적으로 시인될 때에만 죄가 된다."[글 130 편 1.5]

 

그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인간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의 모든 고통들 안에서 내가 고통을 받는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이해심 그리고 동정심 가득한 이해심을 의심할 여지없이 경험하고 계신다; 그는 정말로 괴로워하실 수 있지만, 나는 우주아버지가 경험하시는 그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한다.[글 3 편 6.6]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조언과 그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생각해 볼 때, 누가 욥의 태도를 잘못된 것이라고 질책할 수 있겠는가 ?  욥은 인간을 이해하는 하느님을 갈구하고 있었다, 욥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람의 처지를 잘 알아주고, 낙원으로 올라가는 긴 여행에서 첫 번째인 사람의 이 삶의 한 부분에서는 때때로 정의로운 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으면서도 고통받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아주는, 그러한 신성한 존재와 교감을 가져보려고 절실하게 소망하였음을 보지 못하겠느냐 ? 그런 까닭으로 인하여 사람의 아들이, 이제부터 욥과 같은 고통을 참아내도록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지 않으면 안될 저들 모든 이를 위로하고 구해낼 수 있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그렇게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아버지로부터 내려왔다." [글 148 편 6.7]

죽음으로 끝나는 생명의 끝이 왔을 때, 더욱 멋지고 더욱 아름다운 형체를 위하여, 그리고 다시는 두려움도, 슬픔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죽음도 없는 그곳, 그 최극자와 불멸자의 영역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주저하지 말고 그 육신을 벗어버려라.  하느님을 안다면 죽음에 이어져 있는 그 마지막 끈이 잘라진다.
[글 131 편 4.7]

 

(이 글은 미국 유란시아 독자모임인 진리사랑회의 자료를 옮긴 것입니다.)